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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비판

약주고 병주기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효는 인간이 지녀야 할 도리다.

특히 유교를 숭상하는 동양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효 이전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먼저다.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녀를 학대하던 부모가 늙어서 효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독교는 여호와가 인간을 창조했다고 가르친다. 곧 인간의 아버지가 여호와라는 말이렷다.

신도들은 맹목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외친다.

기쁘게 해 드리려고 재롱 떨고, 숨 넘어가가까지 찬양하고 우러르기 바쁘다.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용돈(십일조 헌금)도 두둑히 갖다 바친다. 그러고서도 뭐가 부족한지 자신은 죄인이라며 용서해 달라고 빈다.

 

여호와가 이렇게 효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 한 번 살펴 보기로 하자.

그래 여호와가 인간을 위해 천지를 창조했다고 치자.

허나 여호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그런 부모는 아니었다. 보육을 등한시한 것.

만들지 말아야 했을 선악과와 간교한 뱀을 만들어 제 자식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고, 이들이 뱀의 꾀임에 빠져 죄를 짓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에게 온작 저주를 내린다. 이런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여자(하와)에게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남자(아담)에게 노동의 수고를 안기고 낙원에서 쫓아낸 것.

이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인간 부부가 자식을 낳은 형제(아벨과 가인)를 편애하여 형제간 살인의 동기를 제공한다.

마침내 자식을 낳은(창조한) 것을 한탄하여 홍수로 쓸어버리기까지 한다.

노아의 홍수.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렇다고 믿는 신도들이니 그냥 넘어가 주자.

 

 

  [병 주고 약 주기]

 

한 남자가 병원 원무실 수납창구에서 환자 퇴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직원과 몇 마디 주고 받던 그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돈을 내라니요? 환자를 치료한 분은 하나님이잖소.

교회당 가서 내가 직접 만나 지불하겠소.

아니지. 내가 만나면 꼭 따져 물을 것이오.

평소 건강하던 환자에게 병을 준 것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잖소"

이 병원 현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었다.

<당신을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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