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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를 읽고

1.

야위고 쭈글쭈글한 늙은 여인. 마더 테레사.

전세계에 500개가 넘는 수녀원을 운영하면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는 노파를 누가 헐뜯겠냐고?

그랬다.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모두가 그 노파를 칭송해 마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비판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크리스토퍼 히친스만은 달랐다. 그 노파가 오만하게 오랫동안 피해갔던 합리적 비판을 이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자기를 희생한 열혈 신앙인인가? 아니면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인가?

마더 테레사를 직시한 사람이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히친스는 놀라움을 표했다.

그가 바라본 테레사는 정치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히친스는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이 종교를 장식한 꽃들을 뽑아버리는 것은 신도들로 하여금 위안 없는 종교를 지니라는 뜻이 아니라, 종교의 사슬을 끊고 살아있는 꽃들을 모으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히친스는 그 사명을 십분 발휘하였다.

그가 본 마더 테레사 현상은 종교를 장식한 꽃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종교 앞에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서서 살아있는 꽃들을 모으게 된다면, 자유사상의 휴머니스트들을 기리는 데는 종교처럼 연기 피우는 제단이나 위압적인 사원은 필요없다고 외친다.

 

  2.

아버지 뒤를 이어 철권통치로 유명했던 아이티의 잔혹한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

그를 선전하는 한 기관지에 실린 커다란 사진 하나.

여기에 그의 아내(곧 영부인) 미셸이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서있고, 팔찌를 한 그녀의 팔을 정답게 감싼 채 존경과 복종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대통령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 행동으로써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하고 아첨을 떨었다.

이 여인이 바로 마더 테레사였다.

조작된 사진이 아니냐고?

이 책자는 1981년 1월호이고, 실제 이 해에 아이티를 방문한 마더 테레사를 찍은 필름이 있다고 한다.

미국 CBS에서 방영한 이 필름에서 그녀는 미셸 뒤발리에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 내게는 아름다운 배움의 경험이었다"며 찬사를 늘어놓았고, 아이티의 국가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이토록 국민과 친근(?)했던 장 클로드와 미셸은 1986년 민중봉기로 축출되고 만다.

히친스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에서 가장 냉소적이고 천박하며 못된 여성 중의 한 사람, 백색으로 칠한 무덤같은 위선자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었는데, 그러나 마더 테레사는 침묵했다.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릴 수단을 갖고 있었음에도.

테레사는 근본주의 종교인으로서, 세속권력의 공범자였던 것이다.

서방의 지도자들에게도, 심지어는 종교 사기꾼에게도 자신의 위광을 빌려주었다.

"사람들이 속기를 바라니, 속여 먹으라."

라틴어 속담이라고 한다.


  3.

마더 테레사가 워싱턴의 한 빈민가를 방문했다. 

그녀가 이끄는 사랑의 선교회가 이곳에서 활동을 계획할 때 일단의 주민들은, 자기네들을 무기력하고 비참한 제3세계 주민들 대하듯 하는 태도에 불쾌감을 갖게 되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과 주택, 공공서비스지 자선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테레사는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한 마디를 했다.

"우리는 우선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녀가 한 말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히친스의 표현으로, 마더 테레사의 가난 이론은 꽃으로 장식된 굴종의 이론이었다.

테레사의 방문 이후 14년이 지났어도 이곳은 여전히, 아니 더 열악해진 빈민가란다.


  4.

테레사는 성인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성인은 행한 기적이 있어야 하니, 그녀의 자취가 기적으로 둔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그 기적 아닌 기적은 이 카페에 이미 소개한 바와 같다(참조; http://cafe.daum.net/banjinsi/gPJf/29).

그래서일까. 테레사가 한 일이 숭고하고 인도적인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외견상 이같이 보이는 일도 그 모습을 한 꺼풀 벗겨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로빈 폭스 박사가 콜카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 시설(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요양소)을 방문했다. 좋은 인상을 받을 기대에 부풀어.

폭스 박사는 평상시보다 신경을 쓴 안내를 받았거나  평상시보다 상황이 좋았던 날 방문했을 것임에도,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폭스 박사가 본 것은 재해 발생 지역에서의 빈약한 아마추어 진료소에서조차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테레사가 콜카타에서 활동한 기간은 45년이었고, 그중 약 30년간은 엄청난 금품을 후원받았으며, 이곳도 빠듯한 형편은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폭스 박사는 요양소가 마치 나치 수용소의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모든 환자는 삭발을 했고, 의자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처럼 보이는 들것침대 뿐이었다고 한다.

한 방에 50~60명의 남자가, 다른 방에는 50~60명의 여자가 수용되어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는 받지 못했고, 운이 좋으면 항염증제인 브루펜 같은 걸 받았지만 그것도 죽어가는 말기암 환자에게나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주사바늘은 여러 차례 사용했고, 그것도 수도꼭지에서 찬물로 헹구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폭스 박사가 한 수녀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깨끗이 해야죠."

"그래요? 한데 왜 소독을 안 하는 거죠? 물을 끓여서 바늘을 소독해야 하잖아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 시간도 없고요."

마더 테레사가 전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뱅골 지역에 1급 진료소를 여럿 차리고도 남을 액수라고 한다.

히친스는 이런 날림 시설의 운영이 환자의 고통을 착실히 덜어주는 게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을 둔 일종의 신흥 종파를 선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심장질환과 노환을 겪고 있을 때에는 서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그녀였지만, 언젠가 촬영된 한 인터뷰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던 어느 말기암 환자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카메라를 보며 미소 띤 얼굴로 꺼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신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테레사가 전한 환자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발 그 입맞춤을 멈추라고 하세요."

실제 환자의 절박한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장식꽃으로 치장한 것이 테레사의 모습이었다.


  5.

9년반 동안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에서 일하면서 선교회의 규율을 지켜온 수전 실즈.

그녀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랑의 선교회'에 가입했다가 같은 이유로 그곳을 탈퇴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증언이다.

"내가 투덜대는 양심을 달래며 살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마더(테레사)를 인도한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의심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으며, 더 나쁘게는 교만의 죄를 범했다는 징후였다. 나는 나의 반대를 유보했고, 모순처럼 보이는 그 숱한 사항들을 언젠가 내가 이해하게 되리라 희망했다."

종교가 이성의 눈을 가린 하나의 예라 할 만하다.

실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기만과 가식, 위선이었고, 늦게나마 이를 깨닫은 그녀의 선택은 '사랑의 선교회' 탈퇴였다.

엄청난 기부금이 마더 테레사에게로 모였지만,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 쓰는 일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을 호소해 어수룩한 사람이나 기업들이 더 많은 금품을 내도록 조종할 것을 강요받았다는 것.

회계 감사도 없으니 그 엄청난 돈다발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테레사 외에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6.

가톨릭의 교의는 사제나 수녀의 혼인을 금한다. 그러면 가톨릭의 생명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태아의 생명에 관한 한 가톨릭의 교의는 극단적으로 숭고하다. 이런 식이다.

임신부의 임신이나 출산이 모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에도 태아의 생명을 위해 어미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게 마땅하다.

설사 태아가 선천적인 질병을 갖고 태어나 평생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거나 여성에 대한 범죄로 인한 임신일지라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마더 테레사가 지닌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보스니아 전쟁 때 교황이 피해 여성들에게, 침략자이며 강간자의 씨를 낙태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호소했듯, 테레사도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같은 호소를 했다. 피임까지도 비난하는 것이 가톨릭이기는 하다. 인구 급증, 질병, 가난과 굶주림 등은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는 고루한 교의에 빈국의 빈자들이 고통을 당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지동설의 갈릴레오냐 종교재판의 권위냐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교회의 권위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테레사는 낙태와 피임에 관한 한 가장 일관되게 반동적인 인물이었다고 히친스는 지적한다. 


  7.

"우리는 다른 선교회에서는 하지 않는 특별한 맹세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무료 봉사를 하겠다고요. 이 맹세는 우리가 부자들을 위해서는 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가로 돈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히친스는 이 말이 부자에게는 봉사하지도, 어떤 기부도 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사랑의 선교회가 수십년 동안 정부, 재단, 대기업 또는 개인에게서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왔다는 것.

가난을 가장함으로써 이러한 상대적 풍요를 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선 봉사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테레사는 많은 상을 받고 기부도 많이 받게 되었다. 이들로부터 받은 금액이 얼마인지, 어떻게 쓰였는지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이 돈은 많은 용도에 조금씩 나누어 쓰이면서 지속적인 빈민 구호보다는 종교 및 선교 사업에 바쳐졌다고 히친스는 지적했다.

테레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 순진해 계산할 줄 모르거나, 기부자가 누군지 재지 않았거나, 그들이 테레사와 연관지어져 이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히친스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히친스는 테레사의 명성을 이용해 사기를 친 실례를 책에서 소개했다.

가톨릭 근본주의자인 이 사기꾼은 마침내 법정에 서게 되지만, 테레사는 오히려 이 사기꾼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편지를 법정에 보냈다.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없이.

이 사건의 기소 담장자 중 한 사람이었던 한 검사보가 테레사에게 답장을 했다고 한다.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그녀가 사기꾼에게서 기부받았던 금액을 피해자에게 돌려주라고.

그러나 테레사에게선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는 것.

히친스는 이 사건이 테레사의 위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례는 아니라고 말했다.

히친스는 테레사가 다스리는 왕국이 속세와 닮은 데가 아주 많다고 꼬집고 있다.


  8.

테레사는 정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그녀는 정치 '위'에서 일한다기보다는 정치 '너머에서' 초월적인 방식으로 일한다고 주장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히친스의 비판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히친스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사람들이 겉보기대로 단순 소박한 경우는 드물다며, 메스를 들이댔다.

그가 든 사례 중 하나가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유니언 카바이트 공장이 폭발해 2,500여명이 숨진 산업재해 사건이었다.

이 사고는 값싼 노동력과 인도 정부의 세금 감면 혜택을 노리고 들어선 다국적 기업의 업무 태만과 과실로 인한 것이었다.

사고 직후 마더 테레사가 인도 보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공항에서 맞이한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그녀가 한 말은 "용서하세요"였다고 한다.

히친스는 테레사의 방문이 피해 조사와 세속적인 분노를 봉쇄하기 위한 방변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그는 이혼, 낙태, 산아 제한 등을 허용한 입법에 반대하는 보수 교회 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일, 도시 노숙자 문제를 토의한다는 표면상 목적과 달리 낙태 제한에 관한 입법에 힘을 보태려고 영국을 방문한 일, 중앙아메리카 정책에 대한 가톨릭의 환심을 사려는 레이건에게 힘을 실어준 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 정부에 훈계를 하고 나선 일 등이 아무리 합리적인 것이라 해도 비정치적인 것일 수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촉발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현지 과두 지배층이나 외국 후원자들조차 학을 뗄 정도로 끔찍했던 주민 학살과 인디언에 대한 계획적 절멸이 세계적 톱뉴스로 떠올랐을 때 마더 테레사가 과테말라를 방문해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은 모든 게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그런 유의 정치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9.

히친스는 테레사가 독재자, 수상한 사업자(일종의 사기꾼) 또는 온갖 극단 종파 사람들의 광고판 구실을 한 것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녀의 언행도 이러한 연관을 부인한 적이 없으며, 독재자들과의 교유에 대한 질문에도 답한 적이 없다고 히친스는 지적했다.

그저 그녀 자신의 평가대로 평가받고, 마더 테레사로 불리기를 바랄 뿐이었다는 것.

히친스는 그녀의 성공이 겸손과 소박의 승리가 아니며, 교활한 자나 한 가지 목적에 전념하는 자들이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에 기댄, 천년왕국 이야기의 또 다른 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 이 글은 카페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에 실은 글입니다. ---> http://cafe.daum.net/banjinsi/gPJf/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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