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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비판

내 탓이오(?)

<한겨레>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으면서 횟수가 거듭될수록 글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쓰기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는 ‘삶의 창’이라는 꼭지에 딱 어울리는 주제를 잡는 일이 몇 곱절 더 어렵습니다. 이왕에 험한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 다시 잠들기도 그른 것 같아 오늘 새벽에는 작심하고 가부좌를 틀고 요즘 내가 왜 이런가를 곰곰이 성찰해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었습니다. 몇가지 어렴풋이 잡히는 게 있었습니다.

(발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8512.html)

 

위 글은 2014.7.26. <한겨레> 주말판 '삶의 창'에 실린 호인수 사제의 글 일부다. 이 글이 지난번 칼럼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의 글에 대한 나의 비판(참조↘)에 대한 반응인지는 모르겠다. 내 지적이 그에게 전달되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니까. 하지만 내 지적에 반응하여 고백한 글로 보아도 무리는 없겠다.

(참조; ① http://blog.daum.net/deseora/187  ② http://blog.daum.net/deseora/188)

 

이번 그의 글은 뜬금없는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른바 개꿈이다. 이어지는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그가 개꿈으로 잠에서 깨어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자신에게서 삶이 없어지고 꾀만 늘었다며, 강정과 밀양에 다녀온 것 말고는 세월호 특별법 서명지에 이름 올린 것으로 면피 삼으며, 설교하고 훈시하는 것으로 사제의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 있단다. 그는 이게 마약이라며, 온몸으로 사는 삶 없이 머리 몇 번 굴려 '삶의 창'을 쓰려니 잘 안 된다고 고백한다. 예수쟁이답게 예수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가톨릭의 종교적 구호 '내 탓이오!'를 글 제목으로 정한 그의 글은, 가톨릭 사제들의 상투적인  멘트 '내 탓'을 앞세워, 결국 (모든 것은) 자신 탓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이라며 종교적 꾸밈을 떤 그의 글은 말미에서 유병언의 사망과 관련한 의혹을 들며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우리나라가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불신공화국이 되는 데 명색이 사제인 나도 일조했습니다. 가슴을 칩니다"라고.

 

별반 내용도 없는 글, 참 호들갑을 떨었다. 

'내 탓이오' 하고 두리뭉실 넘어가는 것은 종교적인 수사 외에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이는 책임 소재를 뭉뚱그려 책임을 져야 할 자에게는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이 될 뿐이다. 책임 소재는 명명백백히 가려 엄중히 이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