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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비판

교회의 자화상

  1,000만원이 넘는 이불을 덮고 자는 목사, 이런 목회자들이 설교하는 교회의 주일예배에 내노라 하는 인텔리들이 빈자리가 없도록 대성황을 이루는 기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2451.html).

한마디로 말해 미친 것이다. 나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위 신문의 글쓴이(신부)가 얼마 전에 최근에 세례받은 한 신자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신자는 새로 이사한 집을 축복해 달라고 사제를 청했단다. 이게 미신이다. 집을 축복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가?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다.

이런 의미 없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신자는 금일봉을 어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했단다. 훌륭한 일이다. 의미 없는 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했는데, 딱 거기까지다. 사제는 그러지 말고 성당 사무실에 내라고 했단다. 사무실에 갔더니 성당 직원은 감사헌금은 감사헌금대로 받고 (미신행위를 하느라) 수고한 사제에게는 따로 성의를 표하라고 넌지시 귀뜸했다는 것이다.

  이 신자는 "신부님, 이게 옳은 겁니까?" 하고 글쓴이에게 물었다. 글쓴이는 바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단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건 분명 아니다'라고 동료를 비난해서 좋을 것은 없단다. 그렇다고 사제도 연약한 인간임을 강조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낯뜨거운 짓이라 참으로 난처했단다. 옳지 않은 동료 사제를 비난해서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그건 분명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 바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는 이 신부. 이게 교회의 자화상이다.

  교회는 기업과 다르지 않다. 미신과 기복을 파는 기업. 교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자선보다는 교회 운영비가 우선이고, 자선은 교회의 광고 전략이다. 광고에 도움되지 않는 개인적 자선을 꺼리는 것도 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