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천국 불신지옥” 이 구호는 ‘영원한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우리 종교를 믿으라’는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 중에는 기독교 신앙이 사후 천국행과 지옥행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도 그들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종파가 있습니다.
합리적 이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주장은 ‘악한 삶을 살면 영원히 지옥에 간다’ 는 입장보다도 더 비도덕적인 것입니다. 평생 선행을 베푼 사람이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한 지옥에 가고,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 단지 특정 종교를 믿었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은 정의의 원리들 중 ‘보상과 처벌의 크기는 선과 악의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원리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선에는 보상이, 악에는 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원리에도 위배됩니다. 물론 악하거나 결함 있는 자까지도 감싸는 사랑의 원리하고도 배치됩니다.
그러므로 합리적 이성의 관점에서는 “우리 종교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간다”는 주장은 참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다행히 실제로도 이 주장은 참이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은 그 주장이 자가당착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신앙인들은 대개 그들이 믿는 신이 ‘사랑이 가득한 존재’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존재’와 ‘자기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는 존재’는 같은 존재라고 보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합리적 이성의 바람과는 다르게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이 세상보다도 더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곳이어서 특정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런 주장이 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이런 가능성이 사실일 경우를 대비해서 지옥에 안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비책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우리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주장하는 그 종교를 믿으면 됩니다.
정의롭고 선하여 자기를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 보내는 처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신을 믿는 종교나 종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있을지도 모를 영원한 지옥에 대비하려면 이런 신보다는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내는 편협한 신을 믿어야 합니다. 선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신은 그런 신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옥에 갈 염려가 없지만 편협한 신은 혹시라도 그런 신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었다면 엄청난 낭패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신앙에 있어서도 악신(惡神)이 선신(善神)을 몰아내는 셈이지요.
문제는 어떤 종교를 믿으려고 의지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종교의 교리가 맞는 것 같거나 내면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면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려 한다면 그 믿음은 억지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혹시라도 지옥에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어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하기 싫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혹시 지옥갈지 몰라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협박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의 한 경우인데 협박을 받는다는 것과 그 협박 때문에 어떤 일을 억지로 한다는 것은 사람의 자아존중감에 큰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편협한 신을 믿고 숭배하는 것도 전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영원한 지옥에 빠질 가능성을 방치하는 것도 꺼림칙합니다. 이 경우 만약 편협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 중 대부분은 그 신을 납득할 수도 없고 좋아할 수도 없더라도 그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잔악한 독재자를 증오하면서도 복종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불의나 불합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복종의 대가가 영원한 지옥이라는 너무도 가혹한 것임을 안다면 대개는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편협하고 불합리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 그것도 결코 커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그칩니다. 여기서 우리의 갈등도 커집니다. 영원한 지옥에 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믿고 싶지도 않고 잘 믿어지지도 않는 편협한 신의 존재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할 만한 일인가? 영원한 지옥에 빠질 위험을 조금 더 감수하더라도 죽음 이후의 세계가 적어도 지금의 이 세계보다 불합리하거나 비도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신이 존재한다면 지극히 선하고 정의롭고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일 것이라는 희망을, 신을 믿게 된다면 협박 때문에 공포에 떠는 가엾은 모습으로가 아니라 내면의 자발성과 기쁨 때문이길 바라는 기대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다행히 죽음 이후 처할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종교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고 위협하는 종교들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위협을 하는 종교나 종파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슬람교 종파는 알라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어떤 기독교 종파는 예수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종교들 중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나 종파에 따르면 그들의 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자보다 다른 신이나 우상을 믿는 자를 더 미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은 ‘질투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신은 아무 신도 믿지 않는 자는 그래도 용서해 줄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른 종교를 믿는 자는 가차 없이 지옥에 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협하는 신이 여럿인데 그 중 특정 신을 믿을 경우 한편으로는 지옥에 갈 가능성이 줄어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가능성이 오히려 늘어납니다. 운 좋게도 자기가 선택하여 믿은 신이 정말 존재하는 경우 그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자기가 믿은 신이 아닌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경우 그는 괘씸죄로 1순위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은 위협하는 신들 중 어느 한 신을 믿는 것이 줄서기 모험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결코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특정 신을 믿는 것이 ‘믿어서 사실이면 아주 좋고 사실이 아니라도 손해 볼 것은 없는’ 일이 아닙니다. 줄은 잘못 서면 더 치명상을 입습니다. 따라서 줄서기에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중립을 취하는 것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가능성을 더 줄일 것입니다. 아니면 고대 로마인들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도 제사를 지냈던 것처럼 여러 신들의 마음을 동시에 살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영원한 지옥에 보낼 정도로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신이라면 그 신이 자기를 믿는 신자라고 해서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불합리하므로 믿는다’는 말이 있지만 철저한 불합리는 모든 인간의 예측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믿었으니까 천국에 갈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단순하고 소박한 믿음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거나 ‘코란에 그렇게 쓰여져 있다’는 항변도 소용없습니다. 합리성을 넘어선 존재는 자기의 예전 약속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칼 루벵 같은 독실한 종교인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구원을 확신하지 못해 공포에 떨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은 ‘신은 합리성을 뛰어 넘는다’는 말의 귀결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지옥에 보낸다’고 주장하는 정도의 비도덕적이고 불합리한 신이라면 실제로는 전혀 반대로 행할 수도 있습니다. 스탈린만 하여도 아무 이유도 없이 측근들에게 벌을 주고 상을 줌으로써 측근들이 당황해 하는 모습을 즐겼다고 합니다. 권력은 인간의 모든 상식이나 이해에도 구애받지 않는 데서 그 진정한 맛을 느낍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주장하는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지옥에 갈 위험성을 낮추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 위협하는 신들 중 어떤 신이 실제 존재하는 신인지 알 수 없고, 설혹 운 좋게 그런 신을 믿는다고 해도 그 신이 자기 약속을 지킬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믿기 싫은 불합리하고 편협한 신을 억지로 믿어야 하는가 더 이상 갈등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원글 출처 : 불명, 펌글 출처 : 반기련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ree_board3&wr_id=15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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