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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억압 이데올로기

  이색 사회로 가면 우리는 늘 그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놀라곤 한다. 왜 북한에 가면 무조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에 머리 굽혀 인사해야 하는가? 왜 이란에 가면 여성이 머리를 덮어야 하는가? 왜 러시아에서는 소·독전쟁에서의 승리일(5월9일)이 최고의 명절로 인식되며 소·독전쟁에서의 소련 군대에 대한 과도한 비판적 발언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남들의 이데올로기적 표현들은 우리 의식과 심하게 다를 경우 늘 비합리적으로 보일 뿐이다. 이슬람 사회라고 해서 왜 여자는 머리를 덮어야 하는가?

  맞는 질문이다. 사회의 내부결속 및 지배구조 안정화를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늘 억압성을 띠고 있으며 외부자 입장에서 꼭 합리적으로 보일 리도 없다. 문제는, 내부자들에게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당연한 ‘상식’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민족이란 대가족을 위해 싸운 김일성이나 민족을 지켜왔다는 그 후계자들에게 존경심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실은 이런 정서는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의 심정이나 조상의 묘 앞에 제사상을 벌이고 제사를 드리는 효자·효녀의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무신론자나 유교문화권 바깥에서 온 사람에게는 기독교 예배나 제사의례가 북한의 국가의례와 그렇게까지 다르게 보일까?

  (발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ERIES/498/674449.html)

 

  위 글은 '한겨레'에 실린, <'능력'이라는 이름의 허구>란 제목으로 능력주의를 비판한 박노자 교수의 칼럼 앞부분이다.

그는 이 칼럼에서 능력주의는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인간의 진정한 능력은 남들과의 경쟁적 비교가 아닌 연대,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창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진정 인간이 살 길은 성적 순으로 재단되는 '실력'의 저주에서 벗어나 남들과 연대하며 자기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칼럼 말미에서 그는 강조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도입부에 해당하는 위의 발췌 글 부분이다. 

내부적으로는 당연한 상식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라도 외부에서 보면 비합리적이며, 억압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독재자 김일성 부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 이슬람교 또는 유교의 여성 억압적이거나 가부장적인 제도 관습에 대한 순종, 허황한 창조주 에 대한 기독교 신도들의 굴종 등은 외부인의 상식으로 보아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의 말대로 이들 시스템은 사회의 내부 결속과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계급의 억압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인본주의에 반하는 지배와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박차고 나와 인간의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