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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부끄러운 애국가

  "정말 애국가 노랫말을 쓴 이가 친일파 윤치호일까. 어느 시민단체가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이달 말 미국 에머리대를 방문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의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직은 갑론을박 단계라고 하지만 걱정이 쉬 가시지는 않는다. 작곡가 안익태가 이미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판에 작사자마저 그렇다면 우린 도대체 애국가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

    [발췌]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127.html

  첫째는 애국가를 국가(國歌)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부정하는 것, 둘째는 윤치호의 변절이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걸로 이해해 주고 타협하는 것.

  글쓴이는 둘 다 내켜하지 않는다. 앞엣것은 너무 단순하고 뒤엣것은 너무 혼돈스럽단다. 타협책으로 그는 쓰레기언덕 난지도를 떠올렸다. 쓰레기 더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꽃이 피고 새가 깃드는 생명의 땅으로 바꿨듯이 애국가도 마찬가지로 작사자의 훼절이 당혹스럽더라도 3.1운동 때 백성들이, 이후 임시정부 국무원들이,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백만 인파가 불렀던 애국가이니만큼 그의 변절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단다. 대한민국 역사에 친일과 독재의 생채기가 있지만 (민주주의의) 새 살을 돋게 한 것처럼 지금의 자긍심은 과거의 남루함이 있었기에 더 빛이 난다며,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부정이나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인정하는 어정쩡한 주장을 하고 있다(위 링크 참조). 이거야 말로 정말 어정쩡한 타협책이다. 대한민국 역사와 애국가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가당치 않다. 자랑스런 역사도 부끄러운 역사도 모두 우리 역사다. 자랑스런 역사에는 자긍심을 가지고, 부끄러운 역사는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은 애국가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태극기에 관한 법령은 있지만, 애국가는 태극기와 달리 법령 규정이 없다. 국가(國歌)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애국가라면 마땅히 바꿔야 한다. 그게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윤치호는 기독교인이었다. 정말 그가 작사한 것이 맞다면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기독교의 여호와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의 친일 행적과 더불어, 정교 분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인정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國歌)는 종교 여하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온국민이 부를 수 있도록 국가(國歌)를 바르게 하는 것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출처 ;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http://cafe.daum.net/banjinsi/gPdH/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