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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의문

천안함, 미쇠고기, 4대강…MB정부 빵점짜리 답안 [펌]

  10여 년 전 대학원에서 일반물리학 조교를 할 때의 일이다. 기말고사 시험에 이런 문제가 하나 나왔다.

“행성의 운동을 원운동으로 가정하고 케플러의 제3법칙으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유도하라.”

  정상적으로 일반물리학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운동을 하는데, 원운동이라고 가정하면 상황이 매우 단순해진다. 케플러의 제3법칙은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이 궤도 장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 사실과 원운동의 구심가속도를 이용하면, 중력이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뉴턴의 법칙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문제를 푼 학생들은 감점이 없었다. 그런데, 한 학생의 답안지가 눈에 들어왔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중력에 대한 자연의 기본법칙이므로 케플러의 제3법칙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항상 성립한다.”

이 답안지는 즉시 조교실을 일주하며 조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뉴턴이 케플러의 법칙에서 곧바로 만유인력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그 답안지의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전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의 의도는 명확했다. 케플러의 법칙에서 출발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끌어 내라는 것이다. 이 답안지에 0점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출제자가 요구하는 최종적인 결론(만유인력의 법칙)을 답안작성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론을 전제로 뒤집어서는 올바른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일반물리학 기말고사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되는 상식에 속한다.그래서 거창하게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민망할 것 같다. 나는 최근의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10여년 전의 그 0점짜리 답안지가 떠올랐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공식 조사결과 발표가 20일로 다가왔지만, 이미 한국에서는 북한 공격에 의한 침몰로 오래 전부터 결론이 나 있었다. 이런 사건의 경우 침몰 원인이 외부 공격에 의한 것인가 사고에 의한 것인가가 일차적으로 중요함에도 정부와 군, 보수 언론은 외부 공격으로 미리 단정지었다. 그리고는 한국 함정을 공격할만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지 않느냐는 대단히 ‘과학적인’ 논리로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일반물리학 시험문제 형식으로 말하자면, “증인들의 증언과 인양된 함체, 각종 기록 증거들을 이용하여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분석하라”는 문제에 대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암함이 침몰했으므로 다른 증언이나 증거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없다”는 답안을 제출한 것과도 같다. 사고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사망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전사자’가 되어버린 건, 이를테면 뺑소니 혐의가 있는 운전사가 피해자에 대해 치한의 칼을 맞아 사망했다고 진술한 것을 경찰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인정한 것과도 같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었으므로 속속 드러나는 증거와 정황들은 그 결론에 맞게 재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버블제트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마자 북한이 버블제트 기술을 입수했다는 기사가 떴고, 지진파에 의한 충격량이 추정되자 북한이 보유한 어뢰 몇몇이 지목되었다.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니까 물기둥이 수평으로 퍼지는 어뢰가 나왔고, 서방에서 많이 쓴다는 폭발물 성분이 검출되자 그 수입경로를 추적하기도 했다. 그 성분의 검출량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양인지, 오차는 얼마인지, 이것이 버블제트에 의한 비접촉 폭발이라는 발표와 상충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의 의혹과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해군참모총장은 장례식에서 보복을 다짐했고, 새로이 구성된 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은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북한의 공격에 의한 침몰도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많은 팩트들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분석한 결론(전제가 아닌)이어야만 한다. 예컨대 버블제트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높다면, 지구상에서 버블제트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미군에 의한 오폭을 먼저 의심하는 것이 정상적인 추론의 과정이 아닐까?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그 어떤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결론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 결론에 맞춰 그 새로운 증거를 해석하는 일은 지금까지 정부와 군, 보수언론이 보여준 상상력에 비추어 보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대통령이 여러 번 강조한 “과학적이고 납득할만한 조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과학자도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실험 데이터를 짜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의 적이다.

  게다가 정부는 결정적인 자료들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으며, 합동조사단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마치 과학논문에서 저자 이름도 무명씨로 나오고, 실험과 관련된 중요한 수치도 숨겨진 것과도 같다. 그런 결과를 의미있게 받아들일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결론이 전제로 둔갑하는 경우는 천안함 뿐만이 아니었다. ......(중략)......

또 다른 현안인 4대강 사업에서도 모든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해도 될 것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도 해야 하고 문화재 조사도 해야 하지만, 올바른 결론을 내기 위한 그 모든 과정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 자체보다도 그런 사실을 얻기 위한 과정 자체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4대강 사업이 친환경적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일단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최근 정부와 조선일보는 새로운 논리를 들고 나왔다. 4대강을 주도적으로 반대하는 서울대 모 교수가 예전에는 인천공항도 반대했다면서 4대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일단 반대부터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대논리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반대해 왔던 조선일보가 이런 논리를 편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인천공항과 4대강 사업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사안을 무리하게 연결하는 시도도 그리 과학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인천공항을 반대한 것이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4대강 사업 반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최근에는 조선일보와 이대통령이 2년 전 있었던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를 두둔했다. 대통령이 말했던 그 ‘억측’ 가운데 하나를 조선일보는 “도대체 광우병 대란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잠복기가 10년쯤 되고 의심환자의 머리를 열어 봐야 최종확인이 가능한 인간광우병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왜 이런 질문을 지금 던지는 것인지 그 의도가 무척 의심스럽다.

 

  2년 전 광우병 논란이 휩쓸고 지나갈 때도 우리는 이 대통령과 언론의 ‘과학’에 시달렸다.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버시바우는 “한국 국민들이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들 과학의 핵심은 ‘미국 소는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은 비과학적인 괴담에 휩쓸려 이성을 잃고 거리로 나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 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밖에 없다. 특히 재협상의 기준으로 삼겠다던 일본과 대만은 여전히 엄격한 수입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과학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사실을 얻기까지의 과정이다.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주장과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때, 각각의 결론을 얻기 위해 어떤 과학적 근거와 논리가 동원되었는지를 살펴 비교하면 둘 중 어느 주장이 보다 과학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주장은 천안함이나 북핵과 마찬가지로 증명해야 할 결론을 먼저 상정하고 다른 모든 근거와 사실을 갖다 맞추었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 관료들과 보수언론 스스로가 몇 달 전에는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에 갑자기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과 보수언론이 ‘과학’을 말하려면 OIE가 무슨 근거로 미국을 위험통제국으로 지정했는지, 그와 관련된 기준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얼마나 보장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지를 주체적으로 따져보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의 행보는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데에만 머물렀다. 특히 광우병의 주범으로 지목된 사료문제에 대한 강화사료조치에는 개선된 사항이 거의 없는데다 (동아일보 관련 기사),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한국의 접근권도 제한적이며, 광우병 발생시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사후적이다. 요컨대 한국정부가 미국 소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방법이 협상 결과 제도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이 대통령과 보수언론은 단편적인 사실들 몇몇을 들고 나와 과학과 팩트의 권위를 실어 국민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의 모든 언명이 모두 사실에 부합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도 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모두가 사실일 리는 없다. 대통령이나 정부나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잘못된 사실을 걸러내고 합리적인 근거들을 확보하여 보다 믿을 만한 결론을 도출하는가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0점이다.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는 컨테이너 산성과 전경들로 막아 버렸으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사태, 4대강 사업, 천안함 사건, 꼬여가는 남북관계 등을 돌아보면, 현 정부는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이미 자신의 정치적인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과학을 들러리로 내세우고 있다. 과정과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성을 체득하지 못한 이에게는 과학의 경이로운 성과들이 그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도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러나 정해진 결론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과학은 무늬만 과학일 뿐이다.

  내가 채점하는 학생의 답안지가 내 손을 떠나 조교실을 떠돌아다니며 온 동네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아마도 국제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4대강 사업, 북한 핵문제, 그리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답안지를 돌려보며 키득거릴 것만 같다. 불행하게도 이 답안지는 한 학기 학점에만 국한되거나, 담당조교의 마음이 편하지 못한 수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5천만, 아니 7천만의 생명,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고 대대손손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미래가 그 속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 발 췌 -----      

           원문출처 : 한겨레 사이언스 온(이종필,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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