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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선언문 [발췌 요약] / 샘 해리스

  무신론은 철학이 아닙니다. 무신론은 세상을 보는 관점도 아닙니다. 단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무신론은 종교의 독단적인 주장에 대해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반론입니다. 

  뉴올리언즈를 박살낸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도시를 박살내는 동안 신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신은 살아 남으려고 높아지는 수위를 피해 다락방으로 올라가 천천히 익사하던 노인들과 여성들의 기도를 당연히 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이 상상의 친구와 대화하다 죽었다는 이 명백한 사실을 무신론자들만이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폭풍우가 뉴올리언즈를 덮칠 것이라는 경고는 꽤 많았습니다. 카트리나의 이동경로에 대한 경고는 침묵하는 자연으로부터 기상학자들이 위성 이미지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것이었죠. 신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뜻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뉴올리언즈의 사람들이 신의 은총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족했더라면, 최초의 강풍이 그들의 얼굴을 후려칠 때까지 아무도 살인적인 허리케인이 그들에게 닥치리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만이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의 끝없는 자기 도취와 자기 기만을 깨닫습니다. 무신론자만이 유아들을 침대에서 수장시킨 바로 그 신이, 자연재해에서 자신들을 사랑해 구원해 주었다고 믿는 게 얼마나 도덕적으로 유치한 짓인지도 깨닫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재앙이 발생해야 사람들이 신앙을 버릴지 궁금합니다. 물론 신자들은 종종 세상의 모든 고통은 다른 신이 한 짓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는 걸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이 악명 높은 재난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은 무능하거나 사악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바이블의 신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했듯이 제우스(Zeus)나 토르(Thor) 신에 대하여는 우리 모두 무신론자입니다.  단지 무신론자들만이 바이블의 신 또한 (이들 신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뿐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수십만의 사람들이 쓰나미로 인해 죽음을 당했을 때, 근본주의자들은 이 참혹한 재난을 신이 분노한 증거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참혹한 재앙에서 한 가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수많은 남녀가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면서, 이런 신앙이야말로 최상의 도덕적 가치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성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에도 종교인들이 계속해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부여한 면허증에 불과합니다. 

  신자들은 무신론이 20세기에서 가장 큰 범죄들을 저질렀다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포트 정권이 어느 정도 각각 비종교적이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이성적인 정권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굴락(소련 수용소), 킬링필드는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비극들은 특정 세속적 이데올로기의 위험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종교적 신앙을 비판하는 이성적 주장은 무신론이 신조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주장이 아닙니다. 무신론자가 드러내려는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신조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역사상 어떠한 사회도 사람들이 너무 이성적이어서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습니다.

  대다수 선진국들의 무신론자 비율은 종교가 윤리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호주,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일본,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과 같은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입니다. UN의 인간개발보고서(2005)에 따르면 이 나라들은 기대수명, 문맹율, 개별국민소득, 교육수준, 남녀평등, 살인범죄율, 영아사망율 등에서 나타나듯 가장 건강한 나라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위 50개 나라들은 확실히 종교적인 나라입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미신적인 종교 성향과 반진화론의 수준으로 대표되는 중서부와 남부 주에서는 위와 같은 사회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수치들에 대한 문제들이 똑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동북부의 세속적인 주들은 유럽의 그것과 비교할 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신론이 건강한 사회와 완전히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종교적 믿음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해 줍니다.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기독교 문자주의와 실제 기독교적 가치들의 관련성은 다른 자선사업 지표에 의해 엉터리임이 드러납니다.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간의 연봉 차이를 한번 따져 봅시다. 영국은 24대 1, 프랑스는 15대 1, 스웨덴은 13대 1입니다. 그런데 83%의 사람들이 예수가 진짜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는 미국에서는 무려 475대 1로, 많은 낙타들이 바늘구멍을 쉽게 통과할 것으로 믿는 것 같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바이블 구절에 빗댄 말).

  종교는 오늘날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큰 폭력의 원천입니다. 최근의 팔레스타인, 발칸반도, 북아일랜드, 카슈미르, 수단,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카프카스 지역 같은 사례들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이 지역들에서 종교는 지난 10년간 문자 그대로 수백만의 죽음을 야기한 명백한 원인이었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을 조장합니다. 세속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종교적 분쟁은 결과적으로 종교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혼자서 핵폭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이 잘 된 사람도 죽고 나서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신앙에 의해 분열된 사람의 정신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며, 이러한 분열은 지성이 종교적인 망상을 뒷받침하게 될 정도로까지 자라납니다. 만약 우리가 종교의 폭력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종교의 거짓된 확신을 근절해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는 근원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죽었다 살아났고, 슈퍼히어로처럼 다시 이 땅에 내려오거나 그렇지 않을 두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코란은 불변하는 신의 뜻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다수의 주장은 지속적인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종교적 신앙은 대화를 멈추게 합니다. 종교는 믿음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계획적으로 금지된 유일한 분야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은 종종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가 되고 죽음의 의미가 되고, 또 너무나도 종종 살인의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성적이 되려는 의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새로운 증거와 이론에 의해 발전시키려는 의지만이 대화의 단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증거가 없는 확신은 인간성을 빼앗고 불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을 테지만,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신조에 의해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간의 대화를 증가시킴으로 인해 세상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심히 가능성 없는 일로 보입니다. 문명세계의 해결책이 명백한 비이성에 대해 서로 포용하는 것일 리 없습니다. 진보적인 종교 토론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서로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부분을 덮어두고 넘어가려 하지만, 이 부분은 같은 종교 신자들간의 충돌 원인으로 남게 됩니다. 노예제도나 식인풍습이 없어진 것처럼 종교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지려면 우리가 신앙의 신조를 버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확신의 강도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정당한 근거와 증거에 비례해야 합니다. 확실하지 않은데도 확실하다고 우기는 것, 어떠한 증거도 없으면서 확신하는 것은 지적, 도덕적인 결함입니다. 무신론자만이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는 종교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그 거짓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발췌 요약)


       <전문 보기> --> 다음카페 [반기독교진보시민회]  http://cafe.daum.net/banjinsi/gPJf/62